00.




“만약에 오빠와 체셔 오빠 중에 골라야 한다면요?”

“당연히 체셔지."



 초상화 안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그 웃음소리는 묘하게 메말라 있는 것 같기도, 혹은 조금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저 그렇게 들릴 뿐인 목소리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메리앤은 결국 그 말에 답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앨리스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색이 다른 눈동자 안에서 제 얼굴을 어렴풋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머리 한 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메리앤이 아무리 신입생이라지만 그 정도는 알았다. 초상화는 아주 사람처럼 굴고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마법으로 구현된, 잘 조합되고 움직이는 물감 덩어리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러나, 어쩐지 그 안에서 제 얼굴이 비치는 것 같은 착각이 가끔 든다고 메리앤은 생각했다. 


 실상 이 곳에서는 창문도 거울이 되었으니 그림이라고 해서 거울 같은 모양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같은 거울 세계에 떨어지고 난 이후로는 뭐든 일어날 수도 있을 법도 했다. 그러니까, 어렸을 적 에나멜이 종종 읽어주던 동화책에 나오던 이야기들처럼.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동화 속 이야기들은 행복한 끝을 맺었다는 것, 이 곳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건 해피 엔딩은 될 수 없다는 것. 사실 처음부터 눈 앞에 제대로 주어진 명제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거울 속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영혼이 이곳에 영원히 구속된답니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것 금지! 거울 밖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우승한 팀뿐! 어쩔 수 없어요. 규칙이 그런걸요! 둥글고 천진하던 거울 안의 글씨체를 떠올렸다. 그렇게 상냥한 어조를 하고서 던져준 규칙은 차갑고 잔인하고, 또 명확했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도. 운이 좋다면 둘 중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이내 메리앤은 수정구 안에서 웅얼거리거나 바라보거나 웃거나 울거나, 하던 그런 목소리들을 떠올렸다. 익숙해져버린 것들, 혹은 익숙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쩌면 받아들여야 할 미래가 될 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의 끝에는 항상 그 날이 닿는다. 어떤 슬픔과, 버거움과, 드문 후회 같은 것들이 가득 가득 모여있는. 

 거울에 이름이 적혔던 날이. 




01.



괜찮아. 다 장난 같은 거짓말이야.

그래도 무서우면 어디든 같이 있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마.

오빠가 지켜줄게.



 거울 안으로 떨어지고 할 일이란 아주 단조로운 것들의 반복이었다. 수업은 당연히 없었고, 매일 열리는 소위 '경기'만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평화로운 - 그것을 실질적인 평화라고 칭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으나 - 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어쨌거나 남는 것은 시간이었다. 잠을 자는 것도 홀의 가장 안쪽 구석에 콕 박혀서, 담요를 두르고 종종 메리앤은 생각했다. 혼자였다면 괜찮았을까? 메리앤은 어렸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구분법에 따르자면, 이 경기는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작은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몇 번을 고민해도 나오는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기실 에나멜 글라이드는 이 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 그건 따지자면 본디 온전히 메리앤의 짐이었기 때문에, 


 '좋겠다?' 


 삐딱하게 날이 서 있던 목소리를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 안에 담겨있는 건 서툴게나마 벼려진, 그리고 메리앤이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어떤 악의였다. 갸웃, 고개를 기울이는 메리앤에게 뾰족한 시선이 쏟아졌다. 얼굴만 예쁘면 다야? 폭언은 낯설었고 그만큼이나 영문 모를 것이었다. 한참을 퍼부어지던 폭언은 돌이킬 수 없는 한 마디와 함께 끝이 난다. 네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 날 제 손가락에 피를 내어 달려가던 동급생을 메리앤은 말리지 못했다. 소문은 학년을 구분하지 않고 돌았고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메리앤 글라이드. 마주하는 게 무서워 겨우 모퉁이에 숨어 들여다 보았던 거울에는 아니나 다를까 제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막 쓰여지고 있었다. 위로 흘러내리는 피가 불길하게도 붉었다. 선득한 감각이 목덜미를 쓸고 지나갔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왈칵 몰려온 공포는 호그와트에서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거기에 악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지금의 메리앤은 어설프게나마 짐작했다. 처음 마주쳐야만 했던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그게 무엇을 불러올 지 알았더라면…. 


 정신없이 달려 에나멜을 찾았다. 어떡해? 나, 사라져 버리면 어떡해 오빠? 울먹이며 내달렸던 그 날 메리앤은 자신을 찾아 꾹 끌어안아주던 에나멜의 체온을 기억했다. 다정하게 달래주던 목소리도 기억했다. 눈 앞에 붉은 빛깔로 적히던 오빠의 이름을 기억했다. 다짐하듯 속삭이던 말들도. 그게 얼마나 소중한 지 하루하루, 매 순간마다 깨닫게 되는, 놓치게 될까봐 무서운,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놓쳐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는 어떤 커다란 온기를. 


 그리하여 메리앤은 종종 꿈을 꿨다. 이름이 적히던 날의 꿈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일어나지 않은 어떤 세계의 꿈. 

 그러나 꿈은 언제나 꿈으로 남았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거울 안의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메리앤은 울었다. 

 후플푸프의 여학생이 홀로라는 것은 퍽 다행인 일이었다. 혼자 있는 침실은 그런 것들을 숨기기에는 아주 적절한 공간이었으므로. 




02. 



 거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아이들은 달라졌다. 메리앤도 그 변화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어제와 오늘이 달랐고 오늘과 그 다음 날이 또 달랐다. 적응과 포기와 체념을 비료삼았으므로, 성장은 무섭도록 빨랐다.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차라리 빨랐다. 메리앤은 조금 영악하게 굴 줄 알게 되었고 힘겨운 내색도 조금쯤은 감출 줄 알게 되었다. 줘도 되는 것과 주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하게 되었고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얼마쯤은 조심스럽게 행동할 줄도 알게 되었다. 보통의 호그와트 신입생에게는, 혹은 오빠를 둔 동생에게는 조금 바람직하지 않은, 혹은 벌써 알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을지도 몰랐지만, 글쎄. 이 곳의 규칙에 따르자면 메리앤에게는 신입생이라는 명칭보다 선수라는 이름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어떤 정체성은…, 


 그 스스로가 어떤 '가짜'로 규정되어졌다는 것. 


 『거울에 이름이 적히면 위딧치에 참가한다. 원래 세계에서 사라진 사람은 도플갱어가 대신한다. 아니야. 사실은 우리가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짜고, 그들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진짜의 자리를 빼앗고 싶은 가짜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니야. 상관 없어. 그래도 이 세계에서 나자빠져 있을 순 없잖아. 초상화들이나 태피스트리들을 보라고.』

 

 2층 교실에서 발견했던 쪽지가 어렴풋이 알려주었던 사실이었다. 어려운 이야기였으나 그럼에도 완전하게 모를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메리앤은 금세 쪽지의 말뜻을 이해했다. 거울 안으로 밀려 떨어진 메리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거울 바깥, 그녀를 밀어버린 메리앤도 움직이고 있을 거라고. 웃고, 말하고, 떠들며, 이런 일들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것처럼 제 자리를 차지하고서. 그러나 말들로 보여주는 것만으론 부족했다는 것처럼 방 안을 가득 채운 거울은 어떤 순간을, 혹은 어떤 현재를 비춰냈다. 사방의 거울이 온전하게 스스로만을 비추던 순간을 메리앤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거울 안에 가득하던 수십 수백, 혹은 수천 그 이상의 자신과, 온기와 바람 한 점 없던 무기질의 호그와트, 발에 못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멈추어서던 순간도. 생생하게 느껴지던 그 섬뜩하고 끔찍하던 고통과, 감각. 붙박인 시야 안에서는 달싹거리던 입술이 빙그레 호선을 그렸다. 그 때, 안녕, 가짜? 하고 


 어떤 메리앤 글라이드가 또다른 메리앤 글라이드를 향해 인사했다.

 그 순간 메리앤은 생전 처음으로 어떤 격렬한 감각을 느꼈다. 낯설고 생경한, 타인에게서 느껴본 적이 있을지언정 스스로가 타인에게 느낀 바는 없었던, 아주 최초의…, 

 어떤 진정 어린 미움과 미숙한 악의 같은 것들을, 스스로가 아닌 스스로에게. 


 그러나 메리앤은 한 발자국을 옮기거나, 한 마디 뭐라고 입술을 달싹이거나, 혹은 그 안에서 요동치고 있는 지독한 감정을 뱉어낼 수조차도 없었다. 순식간에 눈 앞을 어둠이 가렸다. 아득한 추락 끝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거울이 아닌 노란 천장이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소리, 익숙한 냄새. 기숙사 휴게실인가봐.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쪽 빠져있었다. 꿈처럼 모든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아니, 없었나? 확실한 건 분명히 있었다. 직전까지 느꼈던 그 지독한 어떤 갈망과, 악의와, ..... 


 하지만 미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메리앤은 거울 밖의 메리앤이 아주아주 미워서 나가고 싶다가도, 거울 안의 제 오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았다. 거울 안으로 오빠를 밀어버린 거울 밖의 에나멜이 밉기도 했다가, 그래도 오빠와 같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같은 망토를 입은 여섯 명을 생각했다가,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다 다 나갔으면 좋겠다, 했다. 그러다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깨닫고 제 머리를 콩콩 때리거나. ….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집어삼켰다. 나팔 소리를 기다리며 끙끙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메리앤의 시선이 문득 어느 곳에 닿았다. 본디의 기숙사라면 풍경이 내리비칠 자리였다. 햇빛이, 혹은 달빛이 유영할. 그러나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제 모습만 고스란히 돌려 비추는 거울이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오늘따라 그 거울이 퍽 눈에 거슬렸다. 저건 거울일까, 아니면 저 너머로 흘러내린 어둠 탓에 거울처럼 보이는 걸까. 저 안에 비추어진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나일까, 아니면 나의 또다른 '가짜'일까? 그건 중요할까? 가짜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도, 우리 오빠도. 여기에 이렇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데. 꽤 긴 시간동안 뚫어지게 창문을 바라보던 메리앤이 한 순간 팩 고개를 돌렸다. 우으, 몰라, 복잡해~ 싫어... 오빠 보구 싶어. 종알거리며 담요를 푹 눌러썼다. 


 그 직전 어느 한 순간, 창문 안의 메리앤이 샐쭉 웃었던 것도 같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04. 



 그리고 불운과 슬픔은 항상 알지 못하는 순간에 등 바로 뒤에서 입을 벌렸다. 일곱이 여섯이 되는 건 예상도 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면 너덜너덜해진 채 돌아온 레녹스 선배를 보았을 때 짐작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돌아오지 않는 카스토 선배를 기다리던 시간들은 불안이었고 기숙사 벽장 앞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던 순간은 어떤 확신이었다. 감정에 기반하던 막연한 신뢰에 금이 가던 순간에, 기숙사 휴게실은 시끄럽다가, 고요해졌다. 아마도 지나고 나면 다시 시끄러워질 거라는 걸 메리앤은 알았다. 이 곳은 항상 그렇게 북적거렸으니까. 어떤 이야기들과, 생각들과, 그리고 그것들에 맞추어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어라.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홀로 남아 고요한 기숙사에는 오로지 정적만이 흘렀다. 하루 꼬박 기숙사 휴게실에 틀어박혀서, 메리앤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처음에 꾸었던 꿈에 대해서, 거울 안으로 녹아 들어가던 책의 표지에 대해서, 이 곳에 관해 이야기하던 모든 말들과, 목소리들과…, 새로 추가된 규칙, 나타나 웃던 얼굴 같은 것들. 혹은 기숙사 벽장에 걸려 있던 카스토의 명찰에 대해서, 수정구 안에서 부드럽게 유영하던 검푸른 연기에 대해서, 빈 초상화 방, 학교를 먹어치울 것처럼 흘러내리고 기어나오던 그 칠흑같은 어둠에 대해서. 오가던 모든 말들과, 결정과, 그 어지러운 것들 속에서 양 손에 잡은 제 오빠의 망토자락과 제가 입은 노란 망토의 빛깔을 떠올렸다. 둘 다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지칠 때까지 울고 이불을 감싸고 생각해도 결론은 아무 것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열 한살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모두가 섣부르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으므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앤은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려도 될 지도 몰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대거나, 뒤에 숨거나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기 전에 메리앤은 한 명의 선수였고, 나아가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최선을 다해주면, 적어도 그 나머지는 자신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메리앤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건 결국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크리스탈 홀에 나와 앉아, 검푸른 수정구를 바라보던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연기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붉은 눈의 기사가 또다시 활을 들고. 그 어떤 불합리를 합리로 받아들여야 하거나 혹은 선택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에서도. 


 그러던 순간에 불현듯 졸음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어떤 꿈을 꾸었다. 메리앤은, 아니, '나'는 그 꿈에서..... 




05. 



그래서, 그러니까.... 그 때 진짜 갑자기 졸려가지구요~ 

에, 아직 저 이야기 안 끝났는데~ 안 돼요~ 여기 맨날 오기엔 너무너무 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들어주세요. 흐흥. 그러니까... 그 날 그런 꿈을 꾸었는데,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하고, 파란 액자 앞에 주저앉은 채 메리앤은 빙그레 웃었다. 이야기는 아직도 한참이 남아있었다. 어쩌면 밤을 새도 모자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건, 아이가 자라나는 데 있어 아주 나쁘고, 동시에 충분한 환경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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