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조용미, 冬至 中]








 소녀는 검은 나라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적 제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오고 갔을 때부터 그러했다. 새까만 나라에서는 그녀가 사랑하는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푸른 하늘도,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도 없이 그 위로 사락사락 검은 눈이 내릴 뿐인 나라에 쉽사리 정을 붙이기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석탄이 나고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나라에는 검은 눈만큼 검은 먼지도 많았고 어렸던 소녀는 거기서 지병과도 다름없는 기침을 얻었다. 그러니 잦게 유랑을 다니면서도 검은 나라를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 어쩔 수 없이 이끌리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괜히 그러고 싶은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 어떤 무모함이나 충동에 휩싸인 것처럼. 그건 어렸을 적부터 아주 가끔 불쑥 소녀를 찾아드는 순간들이었다. 소녀는 그런 때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 어떤 예감 같은 것들은 그녀에게 늘 좋은 것들을 안겨 주곤 했으므로. 새하얀 첫 눈이 내릴 때, 가장 좋아하는 꽃이 피어날 때, 보고 싶었던 사람이 돌아올 때, 혹은….

 

 반드시 만나야만 할 사람을 만나게 될 때. 




 푸른 나라의 왕은 영 그녀를 보내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서도 이내 순순히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 유랑벽을 막는 것이 소녀에게 하등 도움 될 것 없음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잘 알았던 탓이다. 간소한 짐과 옷차림으로 팔랑팔랑 떠난 여행이었던지라, 검은 나라의 외곽에 들어서는 데까지는 생각보다도 금방이었다. 슬 하늘이 흐려지고 검은 눈이 싸라기처럼 흩날리면 그것이 온통 새까맣게 물든 나라라는 증표였다. 그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침이 날 것 같아 얇은 천으로 입가를 가린 소녀가 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걸까? 목적지는 언제나 그렇듯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 즈음에는 그녀가 바라는 것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소녀는 그 기묘한 직감을 믿고, 발이 이끄는 대로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헉, 여기 어디지...." 


 길을 잃었다.... 어라라. 이 쪽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딜 가야 할까.... 난감하게 웃으며 소녀가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어디지? 아무리 둘러봐도 제대로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했다. 수도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너무 오랜만에 찾아들 때는 감보다도 지도를 믿었어야 했나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노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검은 나라에서 노숙했다간 내일 아침 기침을 한가득 안고 일어날 게 분명했다. 아, 어쩌지, 어떡하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서, 반쯤 앞을 못 보고, 발걸음은 대책 없이 앞을 향하고. 그러다가...




 그만 눈 앞에 대뜸 나타난 커다란 말머리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쿵!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고고. 정신을 너무 딴 데다 두고 있었나아... 기실 아픔보다도 부끄러움이 먼저 찾아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찰팍 주저앉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버티고 있는 것은 흑마였다. 온통 새까만 털에, 눈마저도 새까맸다. 이러니까 저녁에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 조금 억울해져서 그대로 시선을 올리자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램프의 불빛 사이로 딱 봐도 엄청나게 화려해보이는 옷이 언뜻 비쳤다. 어렴풋 본 기억이 있는 검은 나라의 예장이었다. 제대로 차려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민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높은 사람일까? 부끄러운 가운데서도 머리가 팽팽 돌았다. 아무리 책사라곤 해도 일단 자신은 평민 신분으로 여행을 나온 건데..... 그러면, 어... 어....... 검은 공단 위로 화려하게 수놓인 금실을 바라보다가, 음~? 낮은 목소리에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마주쳤다. 놀랐, 놀랐어...~.. 아니, 놀랐어요!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게 천만 다행이었다. 여전히 붉은 얼굴로 소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음 순간 눈 앞까지 다가왔던 말머리가 슥 물러났다. 말 때문에 놀란 걸 알아챈걸까. 소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후다닥 제 몸을 털고 일어서서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 사합니다... 이래저래 귀하게 자라 예의를 차리는 게 제법 어색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눈 앞의 귀하신 분은 소소한 무례 정도는 너그러이 넘겨주실 모양이었다. 마주한 눈이 빙그레 휘어졌다. 조금 용기를 내서 소녀가 다시 웃어보였다. 저기, 혹시 여기서 묵을 만한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아세요?  남자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가,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이 쪽으로. 말하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태워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빨리 가 버리면 곤란한데. 가슴께를 간질거리는 기침을 꾹꾹 눌러 참으며 소녀가 말의 옆을 종종 따라나섰다.


 묵을 만한 곳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 앞으로 작은 산골 마을의 모습의 불빛이 들어왔다. 사실 이것도 꽤 느린 편이었다. 소녀의 속도를 맞추느라 느릿느릿 말이 걸어서 그렇지, 만약 말을 타고 달렸더라면 눈 깜짝할 새 도착했을 터였다. 그 새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 - 엄청난 속도로 잔뜩 내적 친밀감을 쌓아버린 소녀가 일방적으로 말을 걸거나 묻고, 남자가 그것에 대답하는 것에 가까운 형태였다. - 덕에 소녀가 한결 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지 바쁘다며 말머리를 다시금 돌리는 남자에게, 많이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 좋은 사람이었네~ 하고 생각하고, 소녀 역시 걸음을 돌려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간질간질거리는 게, 꼭 기침 때문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나지막한 웃음이 터졌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원래의 자리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조금 놀랄까? 하고도.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소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짧은 한 순간의 만남이 후일 그녀가 검은 나라에 정을 붙이게 되는 이유가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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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러고 나서 공식석상..같은데서 만났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곰곰) 


연 : 그때 그거.. 바빴다고 한 거,.... 혹시 동물들이랑 놀려구 그랬던 거야? 

채호 : ...... 으응~ 

연 : (솜주먹으로 명치를 친다) 팍시....

  


↑이걸 쓰고싶엇던 거 같은데 너무 졸려서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