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한여름날의 불꽃놀이
그 날은 유달리 햇빛이 맑았습니다. 마법으로 투영되는 유리 천장 위의, 언제나 같은 쉘터의 하늘일 텐데 왜 그 날만 그렇게 맑았다고 기억하고 있는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 날은 학교가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양 자리에서 헤어져, 처녀자리로 가는 기차를 탔어요. 처녀자리에서 함께 다니는 아이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샌가 기차는 역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날도 그랬어요. 그래서 ... 그 다음에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제가 올 때면 치즈 그라탕을 했어요. 거기에 우유 한 잔을 곁들여서 테이블에 올려주면 그게 제 점심이었고요. 그리고 저녁에 누나들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새끼양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구웠어요. 제가 돌아오는 날에는 전갈자리에서도 천칭자리에서도 누나들이 다 왔고, 그러면 그건 여섯 가족이 다 모이는 몇 안 되는 날들 중 하나가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최근 몇 년 간은요. 그러니까 집에 가면 치즈 그라탕의 고소한 냄새가 나고, 옆의 유리컵에는 새하얀 우유가 몽글몽글 담겨 있을 거예요. 그 생각을 하면 길다란 오르막길도 힘이 들지 않았답니다.
"엄마아-."
솔라! 하고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 조금 이상했어요. 문이 열려 있던 건 그것보다 아주 조금 더요. 하지만 이웃집에서 우유랑 고기를 얻으러 종종 오고는 했으니까, 그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요.
집 안은 태풍이라도 쓸고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태풍이라는 걸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태풍이란 게 있다면 이런 거겠구나, 싶을 정도로. 난잡하게 널부러진 가구들이 바닥에 조각조각난 채 부서져 있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레코드 판들도, 축음기도, 엄마가 소중히 아끼던 찻잔 세트도, 아빠가 좋아하던 그림 액자도요. 그건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누나? 그래서 저는 발을 옮겼습니다.
작고 아늑한 우리 집은 복도를 지나면 계단이 있는 거실이 보이고, 거실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부엌이 있어요. 거실에는 온통 붉은 발자국과 부서진 물건 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어요. 이렇게 몸을 돌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 그라탕과 우유... 그리고, 솔라, 하면서 반겨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엄마?"
치즈 그라탕의 고소한 냄새 대신에 코끝에는 역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몽글거리는 새하얀 우유 대신에는 검붉게 굳어가는 피가 바닥에 온통 질척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 봤어요. 걸을 때마다 신발이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낯선 핏줄기를 따라 걸었어요. 끝에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쓰러져서, 차가워지고 있었어요. 조리대에는 아직 구워지지 않은 치즈 그라탕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빠는? 누나는? 세상이 빙빙 돌았어요. 눈이 뿌옇게 변했다가 말았다가 했습니다. 손이 지팡이를 꽉 쥐었어요. 누구라도 찾아야 했어요.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피가 잔뜩 묻은 발자국을 따라서 계단을 올라요. 단화 굽이 부딪히는 소리가 딱, 딱, 딱, 딱, 났습니다.
2층도 난장판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피비린내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방은 비정상적으로 고요했습니다. 하나 하나 방을 열었어요. 문고리가 뜯겨나간 화장실 안에서 둘째 누나를 만났을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너무 놀라면 눈물도 나지 않아요. 그냥 아래로 쭉 가라앉습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큼 차분해져요. 그래서... 그래서 누나를 두고 아빠를 찾으러 갔어요. 아빠는 어디 있을 지 알 거 같았으니까요. 아마도 지팡이가 있는 곳일 거예요. 비마법사들과 함께 사는 우리가, 마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약속을 했거든요. 엄마랑 아빠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했어요. 그게 당연하고, 이웃들을 위한 예의라고 해서.. 그래서.... 호그와트에 다닐 때부터 저도 이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달칵. 문은 누구도 들어오지 않도록 잠겨 있었지만, 달칵, 달칵.
"알로호모라..."
작은 속삭임 한 번에 대번 문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너, 너, 어, 어떻"
누나랑, 엄마처럼 싸늘해진 아빠, 부러져 나뒹구는 지팡이. 그리고 나를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아저씨 하나, 둘.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머리는 아주 차가웠고, 누군가 속삭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기 전에, 그 전에, 일단 알량한 내 목숨부터 챙겨야 한다고요. 지팡이를 쥐었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쥐었습니다. 피가 잔뜩 묻은 칼이 들렸습니다. 하나, 둘, 나를 향해 들리는 그게 왜 그렇게 무섭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손을 뻗었어요, 무슨 말을 해야하지? 무슨 주문을 외워야 하지? 새하얗고 새까맣고 모든 색깔들이 번져든 머리 속에서, 딱 한 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 .... .... 싶어. '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날, 처녀 자리 쉘터의 유리 천장 하늘에는 작은 불꽃이 쏘아올려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낮의 불꽃놀이었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의 길이었을 페리큘럼의 불꽃이.
*
1979년 6월 말, 예언자 일보에 짤막하게 한 편의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처녀자리에 살던 마법사 일가족이 비마법사 두 명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살아남은 것은 그 날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던 두 자매와 호그와트에 4학년에 재학중이었던 막내아들뿐이었다는 것. 살해 동기는 그들이 2년 전 당첨되었던 복권의 당첨금액을 노린 것으로 되었으며, 유일하게 생존한 막내아들 역시 살해당할 뻔 했으나, 페리큘럼의 불꽃을 빠르게 알아챈 치안 담당 마법사의 출동으로 인해 천만다행으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들을 기절시켜 무사히 체포할 수 있었다. 범인들에게는 쉘터의 법원을 거쳐 일괄 최고 형벌인 쉘터 밖 추방형이 즉결 심판으로 내려졌다. 이는 단순히 금전을 탐내 이루어진 범행이라는 점과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하고, 유일한 생존자까지 살해해 입막음을 하려 한 악질적인 부분들이 형벌 결정의 주된 요소로 작용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이후 며칠간 장례식이 이루어질 예정이며, (장례식의 일정과 장소가 함께 첨부되어 있다.) 장례식 이후의 일은 전갈자리 소속 성 뭉고 병원의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라일라 럴러바이에게 일임될 예정이라는 내용들이 주가 되어 있다. 또한 한 편, 이 불행한 사고에는 비마법사들과 함께 사는 마법사 가족이 지팡이를 휴대하지 않았던 것에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보여지며, 특별관리구역 이외 쉘터에 사는 마법사들 역시, 상시 지팡이를 휴대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말미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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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2540
저 사건 이후로 충격이 커, 프로필과 같은 상태입니다.
몇몇 친구들은 장례식에 와봤을 지도 모릅니다. 조용했고, 솔라는 울지 않았습니다. 장례식 때도 필담으로 소통했다는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