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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단] 문

별띠첼 2016. 3. 28. 00:02








 잊어버리게 될 꿈을 꾸었다. 


 까무룩 눈 감은 끝에 도달한 혼곤한 어둠이었다. 한없이 가라앉은 마지막에서야 보이는 것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그럼에도 익숙한 흰 대리석의 문이다. 단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하나 둘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소리가 유달리 귀에 크게 들려왔다. 천천히 발을 옮겨 계단 끝에 자리한 문 앞에 선다. 이 문 뒤에는 아마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찾고 싶었던 것들, 혹은 묻어두고 온 것들. 설령 그것도 아니라면…. 

 그래서 지금 이건 꿈일까, 아니면 현실? 잠시 머뭇거리던 단이 이내 그 고민을 거두었다. 꿈이면 어떻고 또 현실이면 어떻던가. 그건 자신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의 꿈은 지독하도록 현실이었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억 안 그 어떤 사람보다도 뚜렷하게 제 삶에 자욱을 남겼다.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의 뒤에 서 있는 것은…, 빤히 제 앞 문을 응시하던 단이 느릿하게 손을 들어 그 문 위로 올렸다. 묵직하고 서늘한 냉기가 손바닥에 감돌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서 힘을 주어 밀자 열린 틈새로 빛이 새어들어왔다. 그 빛에 눈이 시려 질끈, 감았다 뜨면.




 "…아." 


 눈이었다. 푸른 하늘에서 모든 것을 덮을 것마냥 쏟아지는 눈, 이내 시선을 내리면 황량한 벌판에 놓여있는 부서진 석상들,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푸르고 붉은 색색의 물고기들과….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커다란 고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결국 또다시 이 곳.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수없이 많은 나날을 되돌아간 곳에 또다시 자신은 서있었다. 저 멀리 안개 속으로 희미한 푸른 빛이 보인다. 단 하나 남은 새파란 섬. 발을 옮길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쪽으로 향한다. 시선의 끝이 닿은 곳은 온통 비어있는 하늘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해, 그것들이 본디 있어야 할 자리에 그려내본다. 망치질 소리가 나던 검은 섬, 자신이 몸 담았던 황금의 섬, 온통 고요하던 새하얀 섬과….  

 움직이던 발이 서서히 멈춘 곳은 이제는 무너져내려 끊어진 다리 앞이다. 몇 번이고 향했기에 잊었을 리 없는 곳. 이 다리를 건너면 무엇이 있었는지 단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상인들과 푸른 하늘과, 저 멀리 보이던 붉은 성과, 떠다니던 붉은 돛의 배들. 그리고 조각배에 엉성하게 걸려있었던 붉은 깃발과…. 약속 지켜.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잊어버리기로 했었지. 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부서진 낭떠러지의 끝, 허공에 뜬 다리가 느리게 흔들렸다.


 물결을 따라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러고보니 모든 것이 끝나면 저 끝으로 가 보기로 했었지. 꿈에서 지나가듯 했던 말의 자락이 머릿속에 맴돌아 단이 쓰게 웃었다. 하늘 어디즈음은 바다와 이어져 있으니까. 그럴까, 여기서 못 나가면? 그리고 또다시 약속을 했었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렸다.  

 그러니 하면 안 되는 말이었을 터다. 그러나 인간은 그다지도 어리석기에, 끝을 알면서도 늘 같은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다시금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없던 일이다, 잊어버렸어. 잊어버리기로 약속한 일이다. 되뇌이며 한 번 더 잔뜩 한숨을 토해냈지만,


 "…?"


 다음 순간 시선이 수평선 즈음에 닿았을 때는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거짓말처럼 제 쪽으로 흘러오고 있는 작은 조각배를 마주하고 나서는. 




 하얀 돛을 단 조각배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할 배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맡긴 것은 기묘한 확신이 있었던 탓이다. 조각배는 둥실둥실 앞으로 흘러간다. 모든 물고기와, 고래들과, 섬을 지나고도 한참이나 물결을 따라 떠내려갔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어딘지도 모를 끝의 수평선을 넘어선 순간. 뚝, 떨어져 내린 조각배는 한없이 밑으로 추락한다. 바닥조차 없는 추락.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득했다. 새하얗게 물든 머릿속으로 단은 문득 떠올린다. 끝이 없는 추락은 때로 비행일지도 모르지. 중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수한 순간 속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꿈에서 보았던 것들, 꿈에서 사랑했던 것들. 

 붉은 항구와 흰 대성당, 황금빛의 등불과 푸른 기와들, 그리고 검게 쏟아지던 눈의 끝에…. 


 닿은 곳은 또다시 깊고 깊은 어둠 속이었다. 비명소리,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을 단은 멍하니 바라본다. 

 이 곳이 어디인지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어렴풋하게. 

 그리하여 정처없이 걸어가면, 저 어디즈음에 문이 보인다. 문에 가깝도록 한 발짝 다가선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이었다. 나뭇가지와 새하얀 새의 뼈로 섬세하게 엮여 만들어진 문은 그저 덩그러니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끌어당겨 열까, 하다가 단이 그만두었다. 기실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다. 그 문 뒤에 누가 있을지. 나뭇가지(桑)와, 하얀 새의 뼈(鴉), 떠오르는 것은 단 한 사람이다. 그 이름을 입술에 올리려다 문득 손을 들어 제 입술을 가렸다. 잊어버리기로 약속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속삭인다.

 …부질없는 소리.   


 사실은, 알고 있다. 한참 제 앞에 자리한 문을 응시하다 단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뼈와 나뭇가지, 엮여 만들어진 문 위로 손가락이 얹혔다. 천천히 단이 제 입술을 열었다. 야, 듣고 있냐. 무겁게 목소리가 새었다. 겨우 제 꿈에서야 말하는 진실이다. 이건 네 꿈이 아니라, 내 꿈이니까. 정말로 이게 네게 전해질 수 있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전해질 수 없겠지만. 


 "나, 그 약속 못 지켜." 


 그러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다. 잊어버리겠다고 장담하기에 지나치게 마음에 박힌 이름이었다. 단이 느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예정되어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흡사 유언과도 같았던 그 말을 들었던 순간부터, 아니, 약속 지키라 말하던 그를 보았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부서진 마음의 울타리를 깨달았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알지도 못한 사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을 때부터…. 혹은, 혹은, 혹은….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두고는 만다. 주저하던 단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로는 못 잊어버려.

 그러니까, 다시, 만났으면. 해. 어디에서라도…, 언제라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억하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놓아버렸던 손을 끌어당기는. 

 아마 자신은 그 순간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단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꼭 다시 만나자고, 미처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어놓는다. 


 "서상아."


 그리고 그 순간, 꿈이 무너져 내린다.

 손에 닿았던 문이 멀어지고 가장 깊은 저 바닥에서부터 순식간에 건져올려진다. 스쳐 지나가는 어둠들은 하나하나의 감정이 되었다. 한 순간 문득 아쉬웠다가, 웃음이 새었다가,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런 꿈이었고, 그런 감각이었다.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의 끝에 문득 빛이 보였다. 그 빛에 눈이 시린 단이 질끈, 감았다 뜨면.

  

 부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빛이 새어들었다. 또다시 현실, 그리고.

 이제는 잊어버리지 않을 꿈의 끝이었다, 달갑게도. 








머냐 그 세문장 주신거 쓰다가 어디로 글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네요 도대체 이 글의 주제는 뭘까? 심지어 상아 안나옴(ㅋㅋ)

뭐 현실에서 못 만나도 꿈에서 좀 만날수도 있죠... 어차피 꿈에서 쌈박질도 하는 애들인데 그쵸 (급기야 아무말

여튼 상아가 ... 문 못 열고.. 계속 꿈을 꿀때마다 본다고 하셨던게 너무나 생각나버려서 그 머냐 그.. 예전대화랑 세문장이랑 엮어봤읍니다 

하루 한번씩 말하는 것 같군요 상아복지좀 해주세요 그럼 이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