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LOGS

[윤해영] 02

별띠첼 2016. 10. 27. 21:20

 

 


 ... 음, 제가 괜한 말을 한 걸까요? 

 아, 아 아뇨! 기, 기, 기뻐요. 기쁘긴 한데....


 

"그, ..한 번으로 만족해요. ...어, 괜히 불편하실지도 모르셨을텐데 불러줘서 고마워요.. 기뻐요."

 그제서야 머릿 속을 채우던 얼떨떨함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불러놓고도 납득하지 못했던 호칭에 관한 이야기다. 



 해영이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머릿 속은 차분했고, 동시에 온통 혼란으로 범벅이었다. 해수의 말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기실 한 번만 제대로 생각하면 애시당초 그렇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오히려 자신이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던 것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굳이 당황했던 이유를 따지자면 그 쪽이 조금 더 가깝겠지. 형이나, 누나나... 뭐 그런 것들. 혹여 누군가를 의지하는 느낌이라도 들까 싶어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호칭이었다. 어차피 없을 사람. 굳이 호칭까지 붙여가며 부재를 재확인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몇 년쯤 전이더라. 미묘하게 어긋나 있던, 지금은 완전히 박살나버린 관계들 사이에서 해영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다. 뒤에 딸려 있는 입 같은 건 있을지라도 말이지. 지나치게 일찍 그 사실을 깨달은 해영에게 있어 누군가를 구분하고 호칭하는 것은 그저 이름으로 충분했다. 그것도 자신이 기억하기에 편할 정도면 족했다. 그러니까 그런 특별한.... 호칭 같은 건 굳이 덧붙임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그런 걸 별로 신경쓰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그런데…, 해영이 난감하게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반쯤은 충동이었다고 해도, 자신 앞에 있는 건 만난 지 고작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4년 가까이 살아오면서도 이만큼 가깝게 여겼던 사람들은 없었다. 어째서? 단순히 그들이 자신이 호의를 느껴 마땅한 데미갓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이에 정말 정이라도 들어버린 건가? 한 번의 죽음을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별 생각 없이 나누었던 몇 번의 호의와 미래 비스무리한 것들이 그제서야 머릿 속에 지나갔다. 



 다시금 해영은 해수를 응시했다. 머리 속은 여전히 차분했으나 동시에 하얗게 비어있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그 근처가 무언가에 둘러싸인 마냥 뻐근하게 답답했다. 아주 오래 전 느꼈던 적 있는 어떤 감각. 과거의 잔재가 목을 죄어오는 것만 같은 감각에 해영이 괜히 목 근처를 몇 번 문질렀다가 놓았다. 어떻게 보자면 별 일 아닐 지도 모른다. 그저 호칭 하나 덧붙었던 것 뿐인데 뭐 그리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그 익숙한 감각의 재림이 해영은 지독하리만큼 싫었다. 잃어버리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었고 더불어 두려운 것이었다. 해영은 머리가 좋았고 이 곳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몇 가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제 앞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정을 주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어나가겠지. 그건 제 앞에 선 해수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중 누군가는 손에 그 피를 묻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내일은 반대가 되겠지. 설령 이것이 경합의 이름을 내건 게임이라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하여, 그 모든 경험의 끝이 없던 일이 되는가? 머리를 꿰뚫던 총격의 감각을 떠올린다. 문득 해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끝은 어떨까. 결과는 명료하게 출력된다. 

 그러니까 결국은 허무할 것이라고. 녹아버린 사탕의 달콤함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해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숨부터가 먼저 새었다. 반짝거리는 금빛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조금, 어쩌면 애써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퍽 웃긴 모양새이리라고 짐작했다.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 ....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아직 저한테도 이런 점이 남아있었다. 싶어서요. 

 그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말들은 생략한 채, 해영은 그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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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해수 사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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