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영] 03
쓰레기 봉지를 펼치자마자 눈 앞에 나타난 것에 해영은 숨을 집어삼켰다. 죽음의 냄새가 머리를 가득 채운다. 어제 한 번 보았음에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남자의 사체였던...., 이제는 사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어떤 '것'. 퍼즐 놀이라던 쪽지의 말대로 그 것은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되어 있었다. 입에는 개의 주둥이가, 등에는 어제 자신이 끼워맞춰둔 타조의 날개가... 텅 비어 있는 하반신의 앞부분에는 말의 앞다리만이, 실키가 그 뒤로, 상어의 지느러미를 밀어넣었다. 끼기긱, 끼긱, 끼기긱, 끼긱. 기묘한 소리가 난다. 날아다니고, 헤엄치고, 물어뜯고... 그러다 문득 팔에 시선이 가 닿았다.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이 눈에 담긴다.
'그것'의 작은 앞다리다. 맞춰진 조각들 사이로 그것은 유난스레 작아서 기이하게도 더욱이 눈에 들어왔다. 끼기긱, 끼긱. 불쾌한 소리는 자꾸만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것은 마치 잘 길러진 것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우며, 핏물로 더러워진.... 자신은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어제 보았던 것이다. 그저께까지는, 어쩌면 어제까지도 땅을 밟고 뛰어다니던 것. 처음 이 곳에 왔던 날, 자신이 쓰다듬었고, 귀엽다고 생각했으며, .. ... 이렇게까지 될 지 알지 못했던, 끼기긱, 끼긱, 아. 내가 무슨 생각을? 순간 해영은 어제 항구에서 만났던 가이안을 떠올린다. 위로받아야 했던, 외려 자신을 위로했던. 어두운 시야 너머로 끌어안아주었던 그를 떠올리고, 그 품에 안겨있었던 남은 한 마리의 염소를.....
떠올리는 순간 울컥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헛구역질이 나 해영이 입을 틀어막았다. 머리가 멍했다. 숨이 가빴다. 이미 지쳤던 탓인가, 아니면 어제 꾸었던 꿈의 탓인가. 평소라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굴러갔을지도 모르나 지쳐버린 머리로는 크게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세상이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땅바닥이 가까워졌다. 무릎이 깨질 것처럼 아프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부딪히기라도 했나. 끼기긱, 끼긱, 귓가에서는 여전히 제멋대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린다.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고통에도 변함없이 구역질이 났다. 현실이 지나치게 버거웠다. 다 게워내고 싶었지만 그것조차도 멋대로 되지 않았다. 어지럽고 숨이 막혔다. 한계라는 걸 직감한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영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지금은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버텨야만 했다.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해영은 알고 있었으므로. 지난 두 번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바 있는 것이다. 또 누군가가 죽을 것이고, 누군가는 먹힐 것이며..... 해영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버티고 서있지 않으면 안, 안 되는. 버티지 않으면, 어,
끼기긱, 끼긱. 어쩐지 목이 졸렸다. 기묘하고도 섬뜩한 감각에 해영이 제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더듬어 확인했는데도 목이 졸리는 것만 같은 감각은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했다. 이내 답답하게 조여오는 숨이 머리까지 침범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그 다음 순간,
해영은 무너지듯 침잠했다. 온통 암전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이,
변함없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톱니바퀴 소리 뿐이었다.
끼기긱, 끼긱.
끼긱...끼기긱..끽..끼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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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로그... 염소 떠올리는 데부턴 전부 머릿속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