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LOGS 2016. 4. 14. 16:52

 00.


 도망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또다시 병원이었다. 조작된 기억이라고 할 지언정 결국 이 곳이 나에게 가장 익숙한 곳이었고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기에, 이 곳으로 온 건 기실 본능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실험실이 모여있던 병동, 내 이름이 쓰인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금속관 옆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쌓여있던 감정들이 감당할 수 없이 마음의 벽을 넘어서서는 파도처럼 흘러내렸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겨우 틀어막아 두었던 것들이었다. 꾹 눌러 쌓아두었던 것이 터져나왔으니 막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막막함, 사람을 살리겠다던 주제에 오히려 죽음을 손에 쥔 나에 대한 경멸, 혹은 일방적으로 걸었던 믿음의 좌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은 미래와 같은 것들이 넘쳐흐르고 쏟아져내리는가 하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숨통을 틀어막았다. 내 손으로 박제한 내 자신을 옆에 두고서 나는 아마 닿지 않을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왜 당신을 죽이고 홀로 아델라이드 발레리로 남겠다고 오만을 떨었을까요? 하지 못한 말들이 손에 목숨을 쥐어 없앤 죄책감이 이유 모를 서러움이 속을 긁고 상처를 내고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그리고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01.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마비되었던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창문 틈으로 새벽빛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병원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자 "그들"의 기묘한 소리와 발걸음이 거리를 천천히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아침을 알리는 확실한 신호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뿌연 입김이 차가운 공기 중에 흩어졌다.

 혼자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만큼 지극히 비이성적인 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것이 실제로 내게 일어났던 일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지난 1년동안의 기억과 그보다도 더 많은 일이 있었던 1주일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온통 뒤엉켜서 복잡했다. 슬슬 나 역시도 한계였던 거겠지. 한심하게도 터져버릴 때까지 전혀 자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숨을 내쉬자 또다시 하얀 입김이 번져나왔다.

 그렇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라는 자각 정도는 할 법 했는데, 유달리, 이번에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 


'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정도의 아량은 베풀어야지.'


... 문득 떠오르는 말에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확실히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때의 말이야 가볍게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쪽 어딘가에서는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었던 거겠지. 아무래도 나는 의사고, 여기에는 정신과 상담 받아야 할 사람 투성이었고, 내가 의사라도 된 것처럼 착각을 해서…. 내 자신을 환자 다루듯 객관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우울 증세, PTSD, Hyperdopaminemia, etc, etc, etc. 그린 것처럼 내 상태가 이미지화 되어 떠오른다. 어지간히 터질만 했네. 고생했어요. 마음 속 한 구석에 웅크린 나에게 중얼거리듯 던지고는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로 홈플러스가 보였다. 


 "…돌아가야겠지."


 내 자신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어제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친 마당에 돌아가기는 또 애매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건 힐레베란트가 나에게 있어 그냥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던 탓이다. 그건 무리의 치프라는 면에서도 그랬고, 개인 대 개인이라는 면으로도 그랬으며, 또…. 생각을 이어나가다 짜증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하나도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떤 얼굴로 그를 대해야 할 지, 말을 걸어보기라도 해야할 지, 사과...(여기서부터 벌써 한숨만 나올 지경이었다.)라는 걸 하기는 해야할 지. ...... 머릿속이 또다시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이걸 어떡한다. 고민이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단 하나도 부질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그 이후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뒤였다. 




 02.


 "...!"


 다급하게 몸을 피한다고 피했지만 한 발 늦은 뒤였다. 달려든 그것의 손톱이 날카롭게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길다랗게 베인 상처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적색 경보가 울렸다. 욕설을 중얼거리곤 메스를 휘두르자 동맥이 따인 그것이 기묘한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거의 쓰러지듯 옆으로 몸을 날리자 방향성을 잃은 그것이 내 뒤에 있던 철문에 제 머리를 들이박았다. 


 퍽,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으깨지고 뇌수가 흘러나왔다. 머리마저 물렁해졌나. 생각하며 베인 팔뚝을 응시했다.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지독하게도 실감이 나지 않았으나 놀랍게도 머릿속은 평온하게 이 상태에 대해 진단서를 출력하고 있었다. 감염, "그들", 생명, 미래, 뭐 그런 비스무리한 단어들로 가득찬 진단서가 떠올랐다. 쓰게 웃으며 상처를 내려다본다. 

 이 상처가 어떻게 될 지는 잘 알고 있다. 그 작은 아이에게서, 담에게서 보았던 것들이 아마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된다면, 이 상처는 아마 검게 물들고 푸르게 썩어들어가 내 온 몸을 잠식하고, .... 끝내는 머리 속까지 잠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빛나는 이성과 지성, 뭐 그런 것들은 전부 없어져버린 채. 

 차라리 초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게 단두대에 목을 밀어 넣은 다음이라는 점이 조금 우스웠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이 한 사람을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어.... 삽질하다가 다쳤읍니다... 감염...되었습니다.... 

탐라 상황 대박 심란하다... (로그를 다급히 마무리했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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