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롯데월드 건물의 안은 황량하고 싸늘했다. 존재하는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이 곳으로 모여든, 나와 함께 있는 몇 되지 않는 인원이 전부였다. 고작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머릿속으로 무너져내리던 그 날의 서울을 다시 떠올린다. 그 수많은 사람들, 내지르던 비명들과, 놓쳐버린 친구의 손, 그리고 폐에서 보내던 구조신호와, 턱끝까지 차올라 할딱거리던 숨 같은 것들이 다시금 눈 앞에 생생하게 물들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던, 그리고 나 자신이 아무도 구할 수 없었던 그 날.
그 날을 다시 떠올리면 절망감과 함께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고픈 욕망이 불현듯 눈을 뜨곤 했다. 내 욕망이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가지면 안되는 생각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견딜 수 있는 것의 역치는 엄연히 다른 법이었다. 아무리 사람을 살리는 법을 교육받아왔다고 한들 나는 겨우 열아홉에 지나지 않았고, 이 모든 걸 견디기에는, 온통 비관적인 생각들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서. 짜증스럽게 고개를 숙여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복잡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었고, 어떤 것도 내 속에 남지 않은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공허 속으로 자꾸만 욕망이 떠오른다. 아, 이대로 죽어버릴까. 죽어버리면 편해질까?
"…살아 있어, 작은 자매님?"
문득 귓가를 채운 목소리에 무릎을 감싸안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건 바로 시야의 앞까지 다가온 선명한 금빛의 눈동자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목에 걸려 달랑거리는 군번줄, 그리고 누가 봐도 한 눈에 군인임을 알 수 있는 차림새같은 것들. 이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을 제법 잘 이끄는 사람이었지. 친화력도 꽤 좋은 사람이었고…. 뭐 딱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다지 기억 속에 남는 것도, 흔한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 그래서 이 사람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러니까.... 미스터,
"…힐렌베란트?"
잠시 고민한 끝에서야 겨우 그의 성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지나치게 먼지를 들이마신 탓에 까칠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오는 남자에게, 나는 가볍게 고개만 까닥여 보였다. 보다시피요, 살아있네요. 나답지 않게 건조한 말투였지만 그것까지 신경써줄 정도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조금 신기하기는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나치게 지쳐있었고 그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는 점에 있어서.
그 이후로도 그와 몇 마디 정도는 더 나누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덥잖은 이야기였겠지. 머릿속은 이미 충분히 포화상태였고 내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더 기억할 이유같은 건 없었다. 며칠 동행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죽어버릴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가오는 것이 죽음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죽거나, 아니면 그가 먼저 죽거나 하는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과 화산재로 가득한 이 현실에서는 비슷비슷한 결말을 맞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와 나누었던 첫 대화는 딱 그 정도의 인상이었고, 때문에 그 때의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그토록 의지하게 되고, 믿게 될 거라는 것. 혹은 그에게 기대어 조금이나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리라는 것과,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그가 보여주는 하늘을 바라보기로 선택하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 헥사곤?"
그 선택이 몇 번이나 나를 죽음으로 이끌게 될 지조차도, 그 때의 나는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수없이 많았던, 단 한 번의 후회조차도 없었던 그 모든 죽음으로.
-
10대 소녀였던 아델이 로건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느낌으로~
10대 아델은 19살... 곱슬거리는 긴 머리 소녀?...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유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15세때 임페리얼칼리지 들어가서 이론 2년만에 초고속으로 떼고 막학기 실습하고 있었다 정도의 설정으로... 힘내서 설정을 복구한다.. (아님
'ETC > LO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tro (0) | 2016.05.20 |
---|---|
[아델] 휴식 (0) | 2016.04.23 |
[아델] Intermission (0) | 2016.04.14 |
[아델라이드 발레리] 침잠 (0) | 2016.04.13 |
[아델라이드 발레리] 부탁 (0) | 2016.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