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한 죽음에 대한 감상은 뜻밖에도 두렵다거나 무섭다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사실 그런 것들을 체감하기에 다가온 죽음은 지나치게 빨랐고, 그건 내가 무언가 인지할 틈조차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히려 불쾌한 것은 깨어날 때의 감각이었는데, 그건 흡사 깊은 물 속에서 순식간에 건져올려져 뭍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와 같았다. 숨을 들이키자 모든 기억들이 머릿속을 웅웅거리며 메웠다. 쉭쉭거리던 소리, 등줄기를 타고 오르던 오싹한 감각, 어쩌면 이것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리고.
'그냥 옆에 있으면 안 돼?'
그 마지막 순간, 내 곁에는 네가 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내는 순간 빠르게 박동하던 심장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내렸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도 빠르게 머릿속을 채운 것은 당혹과 더불어 찾아온 지독한 무력감이었다. 나의 죽음은 어찌되거나 상관 없는 일이었으나 그게 너에게까지 미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너는 내 그리 길지 않은 생의 대부분을 함께했고, 가장 많은 것들을 나누었으며, 어쩌면 나의 유일에 가장 가까운 친우이기도 했다. 너는 내 선 안을 넘어선 가장 최초의 사람이었고, 그 선 안에서도 나에게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다. 때문에 너에게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너는 그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이였으므로.
설령 그게 내 일방적인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러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었던,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대한 무의미한 가정들이 끊임없이 뇌리를 두드렸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해댔던 것은. 지팡이가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적어도 그랬다면 너 하나 정도는 그런 경험을 겪게 하지 않았을까. 상념들이 구름처럼 머리를 가득 채웠다. 마음이 무거웠다. 너를 다시 마주하고 네가 나를 끌어안는 그 순간까지도.
....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은 네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산산이 부서지고 사라진다.
아니, 너는 나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
너는 내게 그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쓰게 웃었다. 나답지 않게 비이성적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역시 없었다. 등을 다독이던 손을 들어 흰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손가락 사이로 감겨오는 가닥가닥을 언제나처럼 가볍게 쥐었다 놓는다. 불안감 속, 수없이 쏟아지는 생각들 중에서 천천히 네게 들려줄 말들을 골라낸다. 물론 할 수 있는 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골라내고 나면 남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은 탓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이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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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못잃어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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