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TWO/LOGS 2016. 6. 5. 06:12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나이젤.....,"
 "카터."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리라고 예감했던 끝은,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상상했던 것보다도 수십, 아니 수백배쯤 잔인하게 덮쳐들었다. 발끝에서부터 벌레가 기어오르고 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왈칵 치밀었다. 이건 혐오일까, 아니면 배신감일까? 아니, 머릿속으로는 기실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문제다. 문제는 그 어딘가 자리잡은 마음이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죄책감이 무언가를 틀어막은 것처럼 나를 괴롭혔다.
 사실은 알아, 내가 네게 끝까지 모질 수 없음을. 당연하지 않은가. 그 수많은 시간과 셀 수 없는 날들을 함께 보냈던 것이 너였는데. 가장 많은 것들을 나누고, 함께 웃고,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까웠던 사람이 너였는데…. 내가, 그 한 순간에, 너를 손바닥 뒤집듯 끊어낼 수 있을 리 없잖은가. 
 
 그럼에도 내 입술로 선언한 종말이 나를 잠식했다. 심장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똑같이 붉을 뿐이라던데, 그렇다면 지금 내 심장에서 흐르는 것은 피인가, 아니면 나의 치부일까?

 그러나 학습당한 본능은 철저하게 그 모든 것을 무시한다. 배신자, 더러운 것, 나를 속였어. 내 몸에 흐르는 피가, 그 속에서 속삭이는 그 모든 말들이 칼날이 되고 창끝이 되어 도로 나를 찔러왔다. 내게서 처음 들어보았을 말들, 너조차도 알지 못했던 잔인한 말을 듣고 굳어버린 너를 떠올리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조여든다. 아니, 아니야. 나는 이 감정을 모른다. 이건 알 수 없는 감정들이고, 몰라야 하는 감정들이다. 숨을 헐떡이며 방을 나가 몸을 추스렸다. 간신히 빠져나와 푸른 초상화 옆에 기대었다. 눈을 감았다. 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이 버거웠다. 한 순간 또다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감정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 수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참담한 사실이었고, 때문에 나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만 했으나,  

 "다시 물어서 정말 죄송하지만, 진심...이신거죠?" 
 "....그래, 맞아. "  

 사실은 그 어떤 것도 고를 수가 없었다. 고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너무 힘들다면 피해도 괜찮아. 도망쳐도 괜찮아.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아. 네가 그러고 싶다면.'

  

 정말로 괜찮겠느냐고 윈체스터는 몇 번을 거듭 물었다. 그녀 역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심장을 찔러오는 감각을 버틸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심장을 죽여버리자고. 나는 생각했다. 고작 너 하나 때문에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뒤흔들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너를 도려내면 너는 그보다 많은 나를 안고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의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을까? 

 .... 처음으로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야만 했다. 그건 생존의 외침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나를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 도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맨정신으로 내가 너를 밀어낼 수 있을 리 없으므로, 그러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본능적인 거부감조차도 나 스스로는 어쩔 수 없었기에. 이건 그러니 나의 최선이었다. 지팡이의 끝이 이마에 맞닿았다. 작게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린다. ... 작은 목소리였으나, 인지하기에는 충분했다.

 Obliviate. 

 눈을 감았다. 비겁하게도 나는, 내가 아는 너에게 일방적으로 안녕을 고한다. 문득 하늘빛 섞여있던 그 자색의 눈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눈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변명할 수조차 없이 오롯이 내가 입힌 상처다. 기어이 내가 너를 상처입히고야 말았다. 후회와, 절망과, 흐려지는 모든 기억 속에서 나는 겨우 네 이름 한 조각을 찾아냈다. ... 내가, 잘못했어. ... 나이젤.
 나의 가장 소중한.
 소중했던,
 .....
 .
 .
 .
 ?
 .
 .
 .
 ....... 방금, 무슨 생각을 했던가. 
 무슨 이유인지 도무지 기억을 해내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멍한 감각과 미약한 두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야에 아른거리는 에델바이스 윈체스터의 눈이 걱정스럽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선배? 묻는 답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 이유모를 공허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는 정처없이 머릿속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온통 텅 빈 것 같은 머릿속은 아무런 답도 내어주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아, 그래. 이유 모를 공간에 갇힌 지 벌써 꼬박 열흘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테지. 피로와 무력감이 온 몸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몸이 고스란히 반응한 모양이다. 평소라면 턱없이 부족하다며 내쳤을 것이었으나 지금의 나는 겨우 찾아낸 이유 한 조각을 고스란히 믿기로 한다. 아니, 사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이 눈물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

나이젤 기억 못합니다.... 친구 박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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