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종자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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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도진아?
이미 너덜너덜해진, 겨우 붙들고 있던 마음에 치명적인 일격이 쏟아졌다. 단순히 이름이 불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 다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몇 번 곱씹고 나서야 울려퍼지던 총소리와 이름을 연결할 생각을 하고…, 그리고, 그리고…. 순식간에 머릿속이 멍했다. 이후로도 무감하게 쏟아져내리는 목소리들이 수없이 귓가를 스쳐지나갔지만 무엇 하나도 안으로 꽂혀드는 것은 없었다. 대신 그동안 온갖 불길한 상상과 가정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주 자연스러워 차마 곁에 없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건 가족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일 것이고…, 나에게는 청명이와 도진이가 그랬다.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추억들이 너무 많아서. 나에게서 두 사람을 들어내고 나면 절반즈음의 내가 훌쩍 날아가버리고 말 정도로. 너무 소중해서 아낌없이 쥐어주고 내어주었던. 그리고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돌려받았던. 내 마음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면 반쯤은,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소중한 것이 두 사람으로 차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언제나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셋의 관계가 무너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청명이의 사고 때였다. 엄마가 청명이가 많이 아프다고 조곤조곤 말해줬지만 막상 내가 그걸 실감한 건 병실 안에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눈을 감고 있는 청명이를 봤을 때였으니까. 온통 하얀 병실 안에서, 지나치게 큰 병원 침대 위에 청명이가 누워있었다. 불러도 일어나지 않는, 아주 미약한 숨소리와 약간의 기계음, 그리고 부옇게 흐려지는 호흡기가 생명을 증거하는 채로. 아직도 눈 안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광경이었다. 지우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날들과 함께 종종 악몽에 등장하는.
어쩌면 그게 내가 가장 처음 감각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였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한다. 동시에 그 일이 우리 세 사람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끼쳤으리라고도. 사고를 기점으로 도진이도 청명이도 나도 조금씩, 혹은 많이 바뀌었다. 바뀌어버린 것들 가운데에는 가벼운 것들도 있었지만 아주아주 무거운 것들도 있었다. 도진이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며 음악을 그만두었고, 나는 죽음을 쉽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청명이는 높은 곳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쌓아가는 데 있어 그런 것들이 얼마나 커다랗게 작용하는지,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어쩌면 사소했지만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세 사람 모두 걸어가는 발걸음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던 것들 역시 분명하게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은 언제나 다르면서도 같았다. 다르게 나를 위했으나 공평하게 소중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양 손에 하나씩 잡은 두 사람의 손이 내게는 지나치게 당연했다. 그건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달콤한 사탕 같은 확신이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영영 다른 길을 걷더라도 팔을 뻗으면, 이름을 부르면, 혹은 열심히 뛰어가면 분명 잡을 수 있을 범위 안에 두 사람이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같은 것. 그것만큼은 내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주고 조언해주었던 도진이도, 내가 무얼 해도 절대적으로 믿어줬던 청명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대강당 안은 소란스러웠다. 불안이 천천히 그 공기를 잠식하고 있었다. 곳곳이 비어 있는 웅성거림 속에 내가 남아있었다. 방송이 종료되고 나서야 겨우 버티고 있었던 어떤 것이 툭 끊어진 것마냥 고개를 떨궜다. 겨우 불안감을 눌러놓고 있던 얄팍한 이성 같은 것이었다. 최소한의 제어마저 잃은 심장 안쪽에서부터 꾹 가슴을 누르던 것이 목을 틀어막을 것처럼 치밀고 올라왔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이내 눈앞이 뜨거웠다. 흐렸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대강당의 바닥이 부옇다가 또렷해졌다. 후두둑 물기가 떨어져 내렸다. 나무바닥의 색깔이 짙게 변하며 젖어들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울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다음 순간 쓰다듬어주는 온기는 익숙한 것이다.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다. 모를 리가 없어서 나는 그냥 청명이를 말없이 꾹 끌어안았다. 청명아, 부르고 싶었는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입술이 작게 달싹였으나 말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에야 무엇이 그 순간 내 입을 틀어막는지 알았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잡고 있는 손들을 또다시 놓치게 된다면 어쩌지, 하는. 비어있는 손을 이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데서 기인한. 문득 그 허무한 감각을 상상해 보려다 나는 금세 포기했다. 그런 걸 상상이라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손끝에 닿아 있는 두 사람 모두를 절대 놓을 수 없었다. 그런 건 한 번으로 충분했다.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청명이를 보았을 때 한 번으로 정말 충분했다. 여전히 눈가가 뜨거웠다. 숨이 가빴다. 괴로웠다.
견고하게 포장해, 가장 깊은 곳에 누르고 있던 어떤 공포가 왈칵 날을 세우더니 그제서야 현실이 되어 내게 몰려들었다. 소용돌이치는 감각들이 격류가 되어 온 몸으로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 감각들 앞에서 마음은 아주 연약한 모래성과 같았다. 순식간에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 자신마저 휩쓸리고 말 것만 같았다. 바르르 몸이 떨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택을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나는 네가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어.'
언젠가 속삭였던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체스는...승패가 갈리는 게임이야. 아직 조건과 구색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쪽지들이 걸리고. 언제까지고 괜찮은 안전한 게임이라면 좋겠다만, 글쎄. 그 정도는 다 속에 품고있는 의문이잖아. 쭉 괜찮진 않을걸.'
아이러니하게도 순간 언젠가 도진이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건 언젠가 내가 괜찮을 거라고 웃으며 대답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애써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쪽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끌어안아 다독였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 눈을 가린 얄팍한 기만이었노라고.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내 눈앞의 현실로써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고.
설령 그 현실이 얼마나 잔인하다고 할 지라도.
기어코 이제, 지키기 위하여 나아가야만 하는 때가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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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명이랑 도진이 사랑하고요 과거날조 죄송합니다 (오너님들 : ;
도진아 돌아와... 어딧니... 춥지는않니....이불도없는곳에잇는 건 아니니.... (ㅠㅠ) (오너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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