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LOGS 2016. 7. 12. 01:32



 파이프의 연기를 빌어 스쳐지나가는 감정들을 허공에 풀어둔다.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 위로 빛이 얹혀들었다. 제 세상을 가득 채웠다 번지듯 세상에 섞여드는 빛. 하나, , . 그건 이제 저 산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을 닮기도, 혹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을 닮아있기도 했다. 퍼져나가는 빛을 바라보며, 크리스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놓아준 빛의 다른 이름은 추억이다.

 

 추억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사라질 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자신 역시 그만큼 자라났다. 좁은 새장의 일부만을 안고 살았던 작은 크리스가 사교회에서 뼈 있는 말들을 태연히 내뱉을 수 있는 발레리 백작이 되는 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놓쳤고, 잃어버렸고, 도로 잡지 못한 채 한참을 앓았다. 지금 와서 돌이키면 그것은 성장통이었다. 환각처럼 갖가지 색으로 물든 밤과 꿈이 몇 번이고 지나치던 나날들.

 

 잃어버린 것만큼이나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죽음은 지치지도 않는지 때때로 제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가끔은 어린 날 자신의 목소리로, 혹은 제 형의 목소리를 빌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 언젠가 교회에서 울리던 그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크리스티안 발레리는 알고 있다.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소곤거리더라도 자신은 더이상 그 달콤한 침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그건 제 숨의 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

 

 “크리스!”


 불러오는 목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문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건 은발이 곱게 늘어진 여자아이였다. 이제 겨우 일곱 살쯤 되었을까, 하얀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퍽 사랑스러웠다. 이내 제게로 달려들어오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크리스가 작게 웃었다. 오늘도 즐겁게 놀았니, 이레네? 품에 끌어안겨 얕게 킁킁거리던 아이가 삐죽, 표정을 구겼다. 크리스, 또 담배 피운 거에요? 마주쳐오는 연푸른빛의 눈동자에 난감하게 웃으며 크리스는 아이의 뺨을 쓸어주었다. 미안, 미안. 그렇지만 많이는 피우지 않았어. 많이 피우지 않겠다고 이레네와 약속했는걸. 러스티도 약속했어요! 그래, 러스티하고도. 아이의 등을 도닥이며 크리스는 조곤조곤 아이를 달랬다.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고 나서야 아이는 토라진 것이 풀린 모양이었다. 품에 안긴 채로 그 날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즐겁게 속삭인 끝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것처럼 아이는 손을 내밀었다. 크리스의 시선이 아이의 손으로 향했다. 작은 손에는 붉은 단풍의 이파리가 들려있었다.

 

 “예뻐서, 크리스를 주고 싶었어요.”

 

 그제서야 크리스는 실감한다. , 그렇구나. 벌써 가을이. 보통은 건조하게, 가끔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막상 시간이, 계절이 흘렀다는 점만큼은 쉽사리 느끼가 어려웠다. 아직까지도 열 여덟인 것만 같았는데 시간은 한참을 흘러 있었다. 미처 돌아보지 못했건만 계절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어느 새 제 곁에 다가와 있었다. 크리스의 얼굴에 흐린 미소가 번졌다. 그래. 벌써 가을이구나. 소곤거린 말 끝에는 한숨이 물기처럼 배어 있었다. 가을이 지나가면 아마 이 붉은 이파리들도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곧 이제 곧 다시 겨울이 오겠지. 그리고 몇 번째인가의 봄이 오고, 다시 찬란하고 처참한 여름이 올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오래 전 반짝거리던 순간들과는 같지 못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안 발레리는 살아갈 것이다. 그 순간들,

 

 무심히 지나갔던,

 지금 제 곁을 흐르는,

 혹은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언젠가는, 영영 눈을 감을 것이다.

 운명이 마침내 자신을 놓아줄 그 언젠가의 순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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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쓰다가 드랍했다..... 멀 더 복지해줘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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