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LOGS 2016. 8. 5. 02:47


 이프임 공식아님 공식아닙니다







 눈을 뜬 베아트리체 시그리스트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푹신한 침대 위에 자신은 파묻히듯 누워있었다. 온 몸이 무거웠다. 결국 죽지는 못했구나. 멍하니 떠올리며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위에서부터 정갈하게 늘어진 캐노피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여즉 어지러운 머릿속으로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생각했다. 대단하네, 마법. 혀를 깨물어도 어떻게든 살려놓는구나. 마지막의 그 끔찍한 고통과 뱉어냈던 살덩어리, 일그러지던 그의 얼굴 같은 것이 아직도 선연했다. 실로 고통보다 해방감이 더 컸던 순간이었다. 반쯤 납치되어 아퀼루스로 돌아와, 그대로 팔려가듯 시그리스트가 된 이후로는 처음 느껴보았던, 그리고 유일하게 만족스러웠던 감각. 

 그러니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좋았으련만. 억지로 사람을 살려놓은 탓인지 아니면 마법의 탓인지 공중을 부유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마법이 제 몸에 걸려 있을까. 온통 몸을 헤집고 다니는 혼곤한 감각들 가운데서 베아트리체는 문득 기묘함을 느꼈다. 분명히 혀를 깨물었는데도 기이하리만치 고통이 없었다. 멀쩡히 붙어있는, 본디 잘려나갔어야 할 혀의 고통 대신 느껴지는 것은 축축한 천의 감촉이다. 그제서야 베아트리체 발레리는 그 기묘한 이물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거즈가 제 입 안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풀어주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겠지만."


 반대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면서도 증오스러운 목소리였다. 오웬 시그리스트. 말을 할 수 없었으나 베아트리체는 느리게나마 고개를 다시 돌리는 것으로 제 의사 표현을 대신했다. 당장이라도 이 천조각을 뱉어내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몸이 물을 먹은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기도 전에 대답이 이어졌다. 대답은 길었고, 유려했으며, 동시에 잔인했다. 오웬 시그리스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마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베아트리체의 얼굴은, 흡사 사형선고라도 받은 것마냥 새하얗게 흐려졌다. 



  

 * * * * *




 차라리 죽음이 사치인 삶이었다.

 한 자락의 애정도 없이 그저 무력하게 몸을 내어주는 것 이외에는 그저 방 안에 갇혀사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온갖 마법으로 둘러싸인 채 의미 없이 늘어가는 생명의 순간은 흡사 저주에 가까운 것이다. 화려한 새장 속에 박제되어, 매일을 죽지 못해 살아가며 베아트리체는 절망했다. 차라리 입을 열지 않을테니 이대로 굶어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제게 그런 행운 따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자신이 음식을 거부하는 날이면 그 날의 식사를 준비한 집요정의 목이 잘려나갔다. 아침, 점심, 저녁. 5일이 지나고 정확하게 열 다섯의 집요정이 죽어나간 후에, 베아트리체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기실 일말의 희망조차 없었다면 차라리 체념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때로, 혹은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때를 생각했다.

 희망이며 동시에 절망이었던 그 어떤 순간들, 어떤 감정들.

 언젠가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욕심내지 않았다. 아니, 욕심내지 못했었다. 욕심내다 허락된 것들마저 놓칠까봐 두려웠던 터다. 털어놓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저 가능성일 뿐 그 무엇 하나도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한 말은 후회가 되어 가슴 속에 맺혔다. 또다시 기억이 몰려들었다.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자신을 단단하게 끌어안았던 팔이나, 다정하게 닿아왔던 입술, 혹은 나누었던 밤의 온기 같은 것들. 그리고 감히 바랐던 것들마저도.


 옆에 설 수 있기를.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설령 언젠가 신이 허락한다면,

 그를 닮은 아이를 사랑할 수 있기를. 

 그러나 닿지 못할 마음은 혼자만의 몫이었다. 심장이 아프도록 두근거리고 눈가가 뜨거웠다.

 부옇게 물들어 흐려지는 시야에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 순간. 


 "...!"


 아연한 얼굴로 베아트리체는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착각이라고 해줘.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감각은 다시 한 번 찾아들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바라지조차 않았던 감각. 제 안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순간 구역질이 나 입을 틀어막았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기가 막혀 웃음이 새었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차라리 실성하기를 바랐으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료했다. 눈앞에 선연한 현실이 칼날이 되어 잔인하게 정신을 난도질했다. 겨우 끌어모아 안았던 베아트리체 발레리의 어떤 부분이, 혹은 전부가 무너져 내린 순간. 

 천천히, 베아트리체가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오래도록 소리 없는 흐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생명이 제 안에서 느껴지던 찰나에.

 베아트리체 발레리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닿지 않는 죽음을 갈구했다.  













 
인생....... 제가 어디까지 병크를 치는걸까요? (무청님 : ** 
그래도 생각보다는 덜 빻았다고 생각합니다 ..... 빻다가 체력 딸려서 드랍..... (ㅋㅋ) 
써도된다고 해준 밀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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