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TWO/LOGS 2017. 1. 4. 03:06







 

당신은.. 모 순혈가문의 자제이고. 마법부 미스테리 부서에서 예언과 관련된 업무를 했었고. 그러던 와중 마법부 내부에서 제안을 받고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어떤 실험의 대표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실험의 실체가 사람의 영생을 목표로 하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치고 죽거나, 혹은 죽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고. 몇몇은 기억을 강제로 소거당하기도 했다는 것.‘

  

내가 당신에게 읽어낸 것들입니다.’

 



낮은,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리어드 화이트트리는 그 모든 사실을 폭로했다. 몇 개인가의 이름들을 거쳐 이제는 실러라고 불리는 남자가 그 말에 나긋하게 입술을 휘어 웃었다. 자신조차도 조금 잊고 있던 과거를 듣는 것은 퍽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짜릿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낯선 사람의 입으로 이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으나, 그 낯선 이가 화이트트리라는 것은 뜻밖의 재미였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구조들이 짜맞춰졌다. 시간은 큰 틀에서부터 엉겨들어 촘촘하게 짜여졌다. 1984년이라고 남자는 말했던가, 자신이 알고 있는 화이트트리는 1937년부터였다. 그에게도 거진 10년이 가까운 과거였으나 그 첫 인상만큼은 선명했다. 문득, 눈 앞에 어느 기억이 찾아들었다.

 

그 여름날의 끝 즈음 아름다운 장미 정원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는,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남자와 미묘하게 닮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 닮아있었다. 그 성정이건 외양이건. 어쩌면 화이트트리 저 특유의 색깔들에 그리 보았는지도 모르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그 날의 추억에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흑백의 세상에서 색을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억. 터져 오르던 불꽃놀이, 밤하늘에 수놓이던 불꽃, 울리던 건배 소리, 웃음소리들.


그리고 선명하게 웃던 연녹색 눈, 흔들리던 물빛의 머리칼과, ... .....

 

 모두 깨어져 버릴 잔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눈 앞에 어지럽게 지나쳤다.

 문득 그 과거의 환영(幻影)에서 빠져나온 남자는, 같으면서도 다른 그 푸른 눈을 응시하며 조금 웃었다. 입술이 열렸다. 나지막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뱀과 같았다.

 



 내가, 당신의 친척을 안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사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가 없지요. 이쯤 되면 짐작하셨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 분이 제 실험의 대상자였습니다. 선언하는 눈마저 빙그레 접혀 웃었다. 처음으로 완연히 웃고 있는 그 얼굴은 선량한 여행자라기보다 잔악한 악마의 것에 더 가까웠다. 말들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 시기에도 화이트트리가 건재해 있다는 게 반갑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덧붙여,.. 그 분이 그 시기에도 살아 계시는지 퍽 궁금하군요. 그건 제 실험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것 전부 다 사실입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습니까. 미스터 화이트트리?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리어드 화이트트리의 표정을 보며 실러는 기어코 조금 웃고야 말았다. 전쟁의 시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악이 필요한 법이지요. 하하. 웃음소리는 지극히 건조했다. 그리하여 시대는 때때로 괴물을 낳기에, 저는 그것의 다른 이름을 영웅이라 부릅니다. 미스터 화이트트리.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악수할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저는 제가 그 중 하나가 될 줄 알았습니다만, 그러나 그는 손을 잡는 대신 리어드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제 쪽으로 중심이 쏠린 리어드가 당황하는 사이 망토 아래 단단히 쥐었던 지팡이가 겨누어졌다. 아차, 리어드가 눈을 크게 떴으나,

 

 “아무래도 저는 평생을 괴물로밖에 살 수 없을 것 같군요.”

 

 아주 짧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법은 단 한 번, 주문은 매끄러웠다.


 ‘Obliviate’



  

 제가 기억력 마법에 꽤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요. 리어드 화이트트리의 멍한 푸른색 눈을 들여다보며 실러는 빙그레 미소지어보였다.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간 선량한 얼굴이었다. 이로서 그가 읽어낸 것들이 완전하게 전해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일단은 그것이면 족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읽어냈는지까지는 몰라도 리어드 화이트트리는 그의 과거를 읽어냈다. 그러나 그의 전부를 읽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았을 때, 대화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순간 가차없이 실러가 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문득 리어드 화이트트리의 몸이 흔들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사실 실러에게 더이상 그를 배려해 줄 이유가 전혀 없기도 했다. 몇 안 되는, 그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 그러나 기실 그것마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문득 실러라고 불리는 남자가 입술을 열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어쨌거나 저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리어드 화이트트리가 그저 아주 멍한 것처럼 서 있었다.

 







           

'TIKTWO > LO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츠솔렛 헬리오트로프  (0) 2017.03.17
[율리안] I F  (0) 2016.06.13
[율리안] 자각  (0) 2016.06.08
[율리안] 도피  (0) 2016.06.05
[율리안] 균열  (0) 201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