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골라 그나마 바람이 덜한 계절에 왔음에도 사막 한 가운데서는 늘 바람이 불었다. 눈만 빼놓고는 푸른빛의 로브와 얇은 천으로 죄다 가린 모양새였지만 들이닥친 모래를 피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 물론 평소, 그러니까 바람이 가장 덜하다 알려진 시기보다 늦게 이 나라를 찾은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아, 건조해. 잘 참는가 싶더니 기어코 마른 기침을 몇 번 뱉어낸 여행자가 다시금 발을 옮겼다. 몇 번이고 찾아들었지만 이 나라는 검은 눈이 내리는 나라와 함께 가장 오기가 힘든 나라 중 하나였다. 건조했고, 가슴은 답답했고, 사막을 건널 때면 기침이 터지는 건 다반사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여행자는 이 나라를 자주, 그리고 오래 찾곤 했다. 본디 유랑이 잦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연하도록.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상념에 빠지려던 순간 발끝에 단단한 돌바닥이 닿았다. 슬슬 도시였다. 흰 벽돌 깔린 길들이 길게 이어진 황금빛 나라의. 희미한 기름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별이 많고, 풍등이 하늘 곳곳에 둥실하게 떠오른 밤이었다. 그제서야 여행자가 제 입가를 가리고 있던 얇은 푸른 천을 떼어냈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는, 아, 살 것 같아. 작은 소녀의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신발을 벗어 끝부분에 모인 모래들을 탈탈 털어낸 소녀가 다시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풍등 흔들리는 다리를 지나, 광장과 그대로 이어지는 시장을 지나쳐, 어디로 가십니까? 물음이 귓가를 스쳤으나 그저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실로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있었지만 걸음들이 향하는 목적지만은 분명했다. 시작이 어디일지라도 언제나 끝은 같았으므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 끝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제법 동화같은 이야기였지만 소녀는 무언가를, 특히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만큼은 대개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편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여기 있을 것 같아, 하고. 단순한 느낌일 뿐임에도 그런 것들은 신기하게도 맞아들었다. 그래서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감이란 것을 제법 유용하게 사용했는데, 그건 그 예감을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찾기 힘든 사람에게 가는 데 종종 써먹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발걸음의 끝에는 그녀가 찾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핫..!"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었다. 익숙한 뒷모습에 발걸음이 확연하게도 빨라진다. 용무라도 있는 건지 발을 옮기고 있는 남자를 향해서 종종 걸음을 걷다가, 반쯤 뛰다가. 기어코 저 앞 즈음 가던 남자를 따라잡을 때 즈음해서는 이미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저, 기.. 저기- 들리는 건지 아닌 건지 여전히 척척 제 발걸음을 옮기는 친구를 향해 결국 소녀는 제 몸을 반쯤 내던졌다. 야!!! 그리고 그대로 추돌사고. 아고고, 이마를 등에 콩 들이박았다가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푸른 후드가 뒤로 넘어가 연녹빛의 머리칼이 그대로 달빛 아래 흐드러졌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남자가 잠시 자신을 응시했다. 낮게 혀를 찬 것도 같았으나 소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화아아 웃음이 번졌다. 오랜만이지, 나, 엄청, 오랜만에 왔는데. 안 반가워해줄거야? 응? 아는 척 안 해줄 거야? 달가움을 담아 반짝반짝 올려다보자 올라온 손가락이 쭉 이마를 뒤쪽으로 밀어냈다. 우으으으- 그대로 밀려나면서도 소녀는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친화력의 수준이 아닌 것도 같았지만.... 




 나. 나 있지~ 배워왔어! 활짝 웃으며 대뜸 소녀는 본론부터 내놓았다. 그 말에 남자가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팔짱을 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저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 무서웠던 것도 같았는데 이제는 저게 제 말을 들어주겠다는 제스쳐라는 걸 안다. 굳이 종이에 적거나 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은 꾸준히 옐로를 찾아든 시간만큼의 익숙함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친밀함도 조금, 아니 왕창 얹어서. 이것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늦게 왔지 뭐야~. 뭐냐는 듯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소녀가 웃어보이고는, 손을 들어올렸다. 짜자잔~, 이것 봐.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허공에 몇 개인가의 단어가 그려졌다. 남자가 잠시 그 허공을 바라보다가, 몇 번 눈을 깜박였다. 드물게도 먼저 시선이 마주해왔다. 이번에는 좀 놀래켜주는 데 성공한 걸까. 보통은 제가 따라가면 끝까지 그가 도망치곤 했는데. 소녀가 멋쩍게 웃었다.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그러니까, 음. 아직 영 익숙하지 않아, 두서없이 새어나오는 말과 함께 수화가 이어졌다. 너랑, 오래 만났는데... 음. 뭔가... 나,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면, 있지. 조금 더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대. 그래서, 나는 너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었어. 되게 열심히 배우긴 했는데... 배우느라 조금, 늦어버렸지 뭐야. 헤헷...  


 여전히 대답 없는, 이름조차 없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소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사실, 있지. 이야기할 때는 말야, 네가 적어야 내가 읽고, 알 수 있어서…. 그치만 나, 그게 싫었거든. 다시금 입을 다문다. 어설프게 손을 움직였다. 온통 고요한 가운데 제 몸보다 한참 큰 푸른 로브에 휘감긴 손이 허공을 부드럽게 유영한다. 손끝이 서툴게 그려내는 문자가 천천히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 그러니까, 너랑.


 '눈을, 보고 대화하고 싶어서.' 

 하고. 




 문득, 다시금 밤바람이 불었다. 









-

한문장을 쓰기 위해 기승전결 쓰기 너무 죽고싶다 

근데 도진이 모라고 부르죠.... 왜 이름 없죠..... 맘대로 불러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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