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잃어버린 곳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세상은 어쩌면 나에게 지나치게 행복한 곳이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를 제외하면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세상. 나를 모르는 곳이기에 나에 대한 시선은 과분하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상냥하다 말해주었고, 또 누군가는 나를 향해 아프지 않냐 물어주었다. 지나치게 오랜만에 마주하는 친절들이 어색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늘 무시당하는 것에 익숙했고 그만큼 적의어린 시선이 달가운 사람이었다. 호의는 나에게 낯선 것이었다. 도망쳐도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만큼 나는 동요하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이후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속삭이듯 비웃어오는 목소리에 이내 일상으로 돌아오듯 끌어내려졌지만.
그리고 거기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오리 모양의 가면을 쓴 아이였다. 신기하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로 날아들었다. 말이 조금 많았지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조금 알 수 없었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간간히 섞여있었지만 그런 건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듣는 것에 익숙했고, 귓가에 쉴 새 없이 속삭이는 저주를 무시하려면 차라리 알아들을 수 없더라도 시끄러운 편이 좋았다. 동화나라였는걸, 여기에서까지 얽매여있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그러기에 조잘거리는 작은 여자아이는 아주 적당한 상대였다.
그래서 말을 걸었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었다. 일상이라면 의심부터 했을 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않아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만신창이가 된 나를 익숙하게 받아들였으면서도 손이 잘려나간 아이를 보았을 때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한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제게 사랑을 알려주실래요, 아가씨? 물어오는 말에 잠시 고민했던 것도 그 때문일까?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확언하지 못해. 이 곳에서 처음 만난 감정이 나에게는 지나치게 낯설었다. 그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일까?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아마 영영 그럴 테다.
사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떤 이름으로 지칭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 내가 느낀 감정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걸 가장 내 방식대로 표현하기로 했다. 이 곳에서 만난 지 고작 일주일도 안되는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조그맣게 작아져 있는 나와, 엄청나게 커진 사람들과 세상이 어쩐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이었지만.
나는 늘 어디 한 구석즈음은 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는 자그마한 표현을 했다. 감긴 붕대 위로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떼었다. 그 작은 표현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만 이후 그녀가 말해오는 것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런 과분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사실 나는 이 안에, 너무 커다란 걸 숨기고 있거든요.
그래도 당신이, 그런 나에게 그만큼의 표현을 해 준다면.
.
.
.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선물을 하기로 했다. 나와 닮았지만 다른 이름이다.
있지. 사실 나는 내 이름이 조금 싫었을지도 몰라요, 안녕을 말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상냥한 사람에게는 예쁜 이름이 어울려요. 이제 당신은 내 안에 그 이름으로 기억되겠죠?
그러면 나는, 조금 더 내 이름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거에요.
그리하여 당신은 가면 뒤 빛을 품은 별이 되고, 나는 그런 당신에게 안녕을 고해.
잘 있어요. 우리는 헤어질 거고, 서로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거에요. 그러니 이제는,
이별이에요. 별과,
또다른 별의.
-
뭘 썼는지 모르겠지만..... 별이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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