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곡의 첫 한 마디가 들려왔을 때, 엘리노어 스펜서는 알아차린다. 

 당신이구나, 그녀는 나오지 않는 침음성을 삼킨다. 깨달음은 어떠한 이성적인 것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아주 희미한 기억 속 어린 시절부터 선명한 모습이 있다. 유려하게 움직이던 손끝의 움직임이나,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의 그 얼굴이라던가, 혹은 울려 퍼지던 달콤한 선율같은... .... 마주하고 있지 않음에도 엘리노어 스펜서는 눈 앞에 선연하게 그런 것들을 그려낼 수 있다. 단순히 익숙하기 때문만은 아마 아닐 것이다. 몇 되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들 중에서도 그건 아주 소중한 것들이었고 때문에, 자신은 그의 연주 역시도 꽤, 아니....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으므로.

 

" 이건.... 미셸.. 아저씨일까요? "

" ..... 아마도. ... 아니, 확실히. "

 

 유젠트의 물음에 답하며 엘리노어는 눈을 내리감았다. 내가 진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어도 괜찮으니, 그냥 관람객으로 있어주세요. ...연탄으로 치기엔 지나치게 무겁답니다. 아직 생생하게 남은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건 예언이었나요, 미셸? 전해질 리 없는 물음을 마음 속으로 물으며, 엘리노어는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연주는 네 곡 째에 접어들어, 작은 별 변주곡이 성당 안을 울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들려주기로 한 곡이었지. 약속, 지키려나. 작게 미소지었던 것도 같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법 평온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히 평온했었다. 어린 날, 그 추억의 한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러나 문득, 숨이 막힌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 순간.

 한순간 달콤했던 꿈의 종막을 고하듯, 음울하게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던 연주가....

 

 뚝,

 





'무슨 약속을 했어요..?'

'마지막 연주회의 관객이 되어주기로, 그런데...'

'어쩌면 이번에 약속을 어긴 쪽은 내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끊어졌다복도를 헤매이는 발걸음이 바빴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마지막 남은 문을 열어젖히자 눈 앞으로 펼쳐지는 것은 웅장한 예배당의 광경이다. 유리 천장으로 창백한 달빛이 넘쳐 흘렀다. 그 달빛이 내리비치는 곳을 향해 엘리노어가 시선을 돌린다. 크고 아름다운 십자가가 아름답게 걸려있는 아래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아, 그래. 자신이 찾던 것이다. 그토록 헤매던 이유. 눈길은 곧장 떨어져 찾던 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향했으나 그 자리는 텅 비어 그저 서늘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엘리노어 스펜서는, 자신의 예감이 틀렸기를 소원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금 천천히 뜬다. 기실 처음부터 확인할 것은 단 하나였으나,

 그럼에도 마지막에서야 시야에 그것을 둔다. 



 사실 알고 있었다. 바라는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운명은 대개 엘리노어 스펜서에게 그러하였으므로.

 그리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서, 건반 위로 가득한 것은 결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늦었구나. 이미 예감하고 있었음에도 마주하는 순간은 어쩌면 당연하듯 담담하고, 또 어쩌면 처참하도록 괴로워서.

 그제서야 피비린내가 지독했다. 아이는 옆에서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엘리노어는 오르간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건반 위로 손을 올렸다. 숨을 삼킨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천천히 눈을 내리감는다. 어쩐지 아주 오랜만의 연주인데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예감은 환상일까? 아니면, 현실? 이내 엘리노어가 손가락을 뻗어 첫 음을 누른다. 날카로운 칼날이 손끝을 스침에도 손은 멈추지 않아, 하나 둘 마디가 지나가고 악곡이 울려퍼진다. 음표 하나 하나마다 건반 위로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몇 번이고 베여나간 상처 위로 다시금 칼날이 날아들고 흰 손이 엉망으로 붉게 물든다. 

 그럼에도 엘리노어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마지막까지. 


 추억과 약속에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

 울었던가? 웃었던가.... 어쩌면 그저 평온했을 지도 모른다.

 


 [엘리노어의 손은 건반 사이의 칼날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미셸의 피 위로 엘리노어의 피가 섞여든다 ]

 

 이제는 우리 둘 다약속은 지키지 못할 거에요.

 ..... 그렇지요, 미셸?







약속 다 부질없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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